한국일보는 제헌절 77주년을 맞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률의 논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사회의 가족 관념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안도 조명한다.
2024년 8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제417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구하라법)이 재적 300인 중 찬성 284인, 반대 0인 기권 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정다빈 기자 answer@hankookilbo.com
#1. 2019년 사망한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오빠 호인 씨는 "어린 하라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상속 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 청원에 나섰다. 이 사건은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사망 후 상속을 주장할 수 있느냐'는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당시 불거진 '패륜적 상속인' 문제를 계기로 민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됐다.
#2. 비슷한 장면은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재난 이후에도 반복됐다. 자녀 생전에 연락을 끊고 양육에도 기여하지 않은 친부모가 뒤늦게 나타나 보상금, 배상금, 위자료, 보험금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알려지며 '혈연 중심의 기계적 상속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됐다.
이들 사례는 모두 '유류분 제도'의 그늘과 맞닿아 있다. 유류분은 유언이나 증여 등으로 법정 상속분을 받지 못한 상속인이 그 부족분을 되찾기 위해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부양 여부나 관계의 실질성과는 무관하게 단지 혈연과 법적 지위에만 집중하는 구조다. 이처럼 '전통적 정상 가족'만을 전제로 한 법이 현실의 변화와 다양성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국민 감정에 반하는 유류분 청구 소송이 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형제자매에게도 유류분을 보장한 민법 조항(민법 1112조 4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또 기여 여부와 상관없이 유산을 균등하게 나누도록 한 민법 조항(제1118조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간병, 부양 등의 기여와 무관하게 유산을 똑같이 나누도록 강제하는 현행 구조가 위헌적이라는 취지다. 법 개정안 마련 시한은 올해 12월 31일까지로 정했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구하라법'은 비교적 빠르게 처리됐다. 국회는 지난해 9월 미성년자 때 피상속인을 돌보지 않았거나, 가족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학대 등 부당한 행동을 한 사람이 상속을 받지 못하도록 유언 집행자가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하도록 의무화한 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재판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여지는 남아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청구인 대리인이던 법무법인 동인 이해림 변호사는 "유류분 상속권을 제한하는 기준은 '상속인 결격'보다는 완화된 것이어야 하지만, 그 두 기준 사이의 차이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유류분 비율 자체를 조정하는 관한 법안은 지금까지 발의 되지 않았다.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김형두·이영진 헌법재판관은 별개 의견에서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가 생존권을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은 자녀보다 더 절실하다”며 “자녀와 배우자의 유류분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올해 연말이 시한로 다가와 있는데, 그때까지 법 개정을 완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wit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