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에 묶인 자산·치매·상속 분쟁 급증…'소액신탁'이 대안
- 일본은 세제혜택으로 성공…한국, 신탁업 혁신방안 법제화 시급
[뉴시안= 송서영 기자]한국이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노후자산 관리를 위한 핵심 수단인 ‘신탁’의 활용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탁은 재산을 제3자에게 믿고 맡기면, 그 제3자가 정해진 목적에 따라 대신 자산을 관리하거나 전달해주는 구조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말 우리나라의 신탁 총수탁고는 1418조원, 명목 GDP 대비 총수탁고는 54.0%로 일본·미국 등 주요국 대비 신탁의 활성화 정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124.7%, 일본은 286.7%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층 자산구조와 사회적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탁의 대중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신탁 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음에도, 신탁은 여전히 부동산 개발이나 담보대출 목적의 부동산신탁과 금융상품 판매 중심의 금전신탁에 치우쳐 있어 대중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가구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치우쳐 있어 은퇴 후 안정적인 소득 확보가 어려운 가운데 치매 환자 증가(2025년 97만명 추정)와 상속 분쟁도 급증하면서 복지신탁, 유언대용신탁 등 목적별 신탁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며 신탁 대중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은 교육자금증여신탁과 결혼·육아자금신탁에 대해 세제 혜택을 과감하게 부여해 신탁을 대중화했다. 실제 교육자금증여신탁 누적설정액은 2014년 대비 2.4배 증가했고, 결혼·육아자금신탁도 2.9배 늘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신탁이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산층과 대중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신탁에 대해서도 과감한 세제지원을 통해 신탁의 대중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산층 혹은 대중고객층에게 즉각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신탁상품으로는 교육자금증여신탁, 결혼자금증여신탁, 유언대용신탁, 치매간병신탁 등이 있는데, 2011년 신탁법 전면 개정 이후 해당 신탁의 대중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제도적 조치는 미흡한 상황이다.
또한 온라인 기반 신탁 플랫폼과 인터넷전문은행의 신탁업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Trust & Will’이나 일본의 MUFG신탁은행 앱처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신탁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UFG 신탁은행은 치매신탁과 연계된 전용 앱과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는 앱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탁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해 용어 자체도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한다. ‘유언대용신탁’ 대신 ‘생전신탁’과 같은 표현을 써서 국민의 거부감을 줄이고 친근한 금융 수단으로 인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존해 있을 때는 자신이 수익자가 되며(자익신탁), 사후에는 자녀 등 상속인이 수익자가 되는(타익신탁) 구조의 신탁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들은 법제화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2022년 ‘신탁업 혁신방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법제화는 미진하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자산규모와 수익자 특성에 따라 핀셋형 신탁 설계를 병행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 정비와 대중 친화적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